백두대간 종주기
백두간이란
산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백두대간이란 생소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종주를 하게 되고
맥주광고에서까지 알려지기 시작하여 어느정도 친숙해진 백두대간은
산행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이 되고 있는데,
특히 서산에서는 대간줄기가 한편으로 치우친
지역적 특수성과 교통편의상 도전하기 매우 어려운 곳이다.
백두대간을 쉽게 풀어 이야기하자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물을 건너지 않고 골간을 이루며 하나로 이어진 산줄기를 말한다.
시작에 즈음하여
한참 여름이 시작되는 중간에 주야없이 고달프던 교통지도업무를 벗어나
조금은 여유있는 경비작전계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다.
파출소 근무등 시간이 없던 부서에서도
틈틈이 산을 찾던 실력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이 부서에 근무하는 동안 백두대간이란 뜻 깊은 산행을 시작할 수 있게된 것은
나에겐 행운이고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할 것이다.
등산 특히 장기 기간을 요하는 백두대간 산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의 이해라 할 것인데 남편의 잦은 외유에도 편하게 감싸주며 기어히
용서와 이해로 돌아서는 마나님, 사내놈이라고 눈웃음 하나로 이해하는 아들녀석, 품안에서 어리광으로 응원가를 부르는 여우같은 공주님,
주말마다 가족 곁을 떠나 산으로 향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사랑하는 가족의
이해와 격려가 있었기 가능한 것이다.
등산의 매력은 목적지에 조금씩조금씩 다가서는 자기자신에 대한 대견스러움과 목적지에 도착하는 성취감에서 희열을 느낄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자기만을 위한 것이기에 체력의 안배나 경제적 여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장등 자기 주변과 가족의 이해와 격려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준비과정
백두대간은 장기산행으로서 단독산행도 좋지만 일행이 있어야 힘과 정보를
나눌수 있는 좋은 점이 있어 서산시 소재 서부산악회 회원 여러사람과
연락하였지만 최종적으로 해미 산악회원중에서 서산시 해미면 소재지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진용화씨(당 51세)와 구본오씨(당 57)등 셋이서 등반하기로
최종결정을 보게 되었다.
해미산악회는 해미파출소 근무당시 결성된 것으로 경력과 나이에 비해
대단한 실력을 가진 알찬 산악회로써 해미면 소재 가야산에서 살다시피하는
된장냄새가 물신 풍기는 토종 산악회원들이다.
텐트등 등산장비는 서산시 소재 동신레포츠에서 구입하고 천안역에 근무하는
친구 처남에게서 열차카드를 교부받아 기차표를 예매하였다.
나서는 길
황금연휴인 7월16일,17일 이틀연휴를 빌어 드디어 백두대간을 시작하는 날이다.
초등학교 소풍처럼 설레임으로 해미소재지에 있는 진회장 사무실에 갔더니
해미산악회원 10여명이 모여 삼계탕을 사주며 격려해 주었다.
저녁식사후 기다리가다 지루하다고 서둘러서 삽교역으로 출발했다.
해미산악회원들은 삽교역까지 모두 나와 배웅을 해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삽교역에서 원래는 21:41분 차를 타려했는데 20:55분 통일호 기차가 있어
앞당겨 출발했다.
천안역에서 한시간정도의 여유가 있어 이리저리 아이쇼핑하다
23:10분 진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간간이 차창에 부디치는 빗방울들 TV에서 구례 남원쪽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 입산이 통제된다는데 입산통제를 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된다. 연휴라서 좌석예매가 되지 않아 셋이서 모두 기차 맨바닥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잠이 올리 없다.
천하의 전승진이가 기차의 맨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다니,
차창밖에는 레일소리와 빗소리가 어우러지고 있다.
비몽사몽 서너시간 경상도사투리 특유의 시끄러움이 사라질 무렵
마산창원 정도에 오니 자리가 하나씩 하나씩 나고 있다.
아이구 허리야 의자에서 눈좀 붙여야겠다.
정확히 진주역에 7월16일 04:45분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조금씩 거세지고 있다.
어디에 숨어있다 나타났는가 배낭맨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잠도 안자고 택시기사들이 반겨준다. 역앞에 있는 해장국집에허 한 그릇하는데
무슨 맛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음식이다.
택시비를 3만원에 하자고 타협을 봐 5000원을 깍아타고 가다고니 운전자가 이상하다. 운전자 좌석이 고정되지 않아 운전자가 불안하다.
휘청휘청 택시가 불안하고 기본속도 60㎞만 간다.
중산리에 도착하여보니 빗방울이 자꾸만 거세어진다.
계곡의 물소리도 천둥소리와 같이 들린다.
배낭카바 씌우고 등산화 졸라메고 우의를 입고
셋이서 파이팅 악수를 한 후 출발했다.
계곡에는 뽀얗게 물안개가 일어난다.
폭포와 바위사이에서 일어나는 하얀 물안개가 장관을 이룬다.
나뭇잎 위로 뭉쳐서 떨어지는 빗소리는 우박소리 같다.
배낭이 내리누르고 우비 때문에 걷기 힘이든다.
땀이 안으로 차 범벅댄다. 칼바위를 지나자 드디어 비가 그쳤다.
해방이다. 아직도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30분 걷고 5분 쉬고 30분 걷고,
10분 쉬고 4시간만에 정상이 보인다. 맨 뒤에선 나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정상의 바위를 딛고 일어서다가도 힘이 딸려서 자연의 경이에 무릎을 꿇었다.
양무릎에서 피가 튄다.
지리산 산신령님 저의 신성한 피 한 방울 바치오니 백두대간을 무사히...
정상에서는 사람도 많다. 어느 사이 저리도 많은 사람이 올라왔던가.
사진찍을 틈이 없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 표지판 앞에서
'전승진의 백두대간 여기서 시작하다'라는 염원으로 사람과 사람 틈새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장터목 산장으로 향하면서 해미산악회에서 제공한
백두대간 종주 띠지(리본)를 달아매기 시작했다.
장터목 산장의 식수가 흐리다. 빗물이 섞여있다. 입안만 적시고 출발하는데
산장 주변에서 냄새가 난다. 빗물에 씻겼을 텐데도 모두 화장실 같다.
다시 세석산장으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 홍성산우회 회원들을 만났는데 고향사람들이라서 반갑기 그지 없다.
세석산장에 도착해보니 점심 먹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식수가 얼음물이다.
손이 시리고 이가 시리다. 물배를 채우고 세수를 하니 살 것만 같다.
라면을 끓여먹는데 금산에서 왔다는 연인 한쌍이 다가와 라면을 얻어먹자고 한다. 여자의 능청이 간지럽다.
날도 완전히 개이고 포근한 분위기 속에 솦속에선 노루가 뛰어다닌다.
14:30분에 출발 칠선봉을 거치는 도중 대구 한마음산악회 회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3년을 계획으로 대간 종주를 한단다.
선비샘에 도착하니 넓은 공터에 사람들이 장 선 것처럼 가득 차 있다.
물을 몸과 수통에 가득 채우고 출발하다보니 중간중간에 졸고 잇는 사람들이 있다. 날씨와 거리상 어려운 곳이다.
구회장은 못 말리는 사람이다. 흐르는 물만 보면 컵으로 퍼서 마신다.
벽소령 대피소에는 이미 투숙객이 만원이고 매점에서는 살 물건도 별로 없다.
숙소를 찾아 뱀사골로 내려서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우리는 형제봉을 거쳐 20:10경에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다.
연하천 산장 주변은 전체가 물바다이다. 물이 산장을 중심으로 냇물처럼 흐른다. 잠잘 곳은 물론 텐트칠 자리도 없다.
철없는 아주머니가 위쪽에서 머리를 감자 욕설등 난리가 났다.
한쪽에서 비니루나 모포를 둘둘감고 열댓명이 벌서 잠을 청하고 잇다.
텐트를 치면 벌금낸다고 저리들 자나보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로 보아두었던 곳으로 300m 후퇴하여 텐트를 쳤다. 새 텐트이고 처음치는 텐트라서 시간이 걸린다.
오늘 하루 13시간 40분을 걷고 하루 마신 물은 바케스로 하나는 마셨을 거다.
그리고 어떻게 잠들었는지 나도 모른다.
「보이는 산이 더 멀다.」
새벽04:00 기상을 알리는 핸드폰 소리 허겁지겁 짐을 꾸린다.
다시 연하천 산장으로 가보니 아직도 물구덩이 속에서 잠자고 있다.
우리가 법석을 떨자 하나둘씩 일어서기 시작한다.
아침식사는 깻잎 하나에 젓갈 하나 입맛이 깔깔하다.
06:00에 출발하여 토끼봉 삼도봉으로 향했다.
새로 발견한 휴대폰 밧데리를 오래쓰는 방법인데 밧데리를 뺏다가 그냥 끼우기만 하면 밧데리 수명이 오래가고 벨은 울리지 않지만 상대방 쪽에서 볼땐 신호가 계속 가는 속이기 쉬운 절약방법을 사용했다.
비가 개인 젖은 곳이어서 그런지 더위는 덜한 것 같은데 목은 한없이 탄다.
구회장은 흐르는 물만 보면 퍼 마신다. 아이구 저러다 탈이라도 나면 어쩔려구
노고단에서 성삼재로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다리가 벌써 후들거린다.
성삼재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사먹은 후 만복대로 출발했다.
만복대가 저만치 보이는데도 가도가도 끝이 없다.
오가는 사람도 없고 군데군데 대간종주 띠지만 눈에 띤다.
우리 세 사람만의 고난이 시작된 것이다. 전라도의 1㎞는 멀기만 하다.
물도 거의 바닥이 보인다. 머리가 후끈후끈 열이 오른다.
이젠 지쳤나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잘도 걷는다.
만복대에 15:00 도착했다. 멀리 정령치에 패러글라이더가 10여개 떠있다.
각양 각색의 멋진 자태를 새처럼 뽐내고 있다.
만복대 주변에는 파리도 많다. 버린 음식이 많아서 인가,
산정상에 파리가 많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령치 휴게소에 16:00에 도착했다.
휴게소 음식과 음료수가 엄청 비싸다.
음료수,커피,아이스크림,냉수 있는 대로 마시고 마셔도 갈증은 채우지지 않는다. 택시를 불렀더니 남원역까지 3만원이란다. 기차에 오르자마자 누워버렸다.
이렇게 피곤할 줄 몰랐다. 삽교역에서 해미산악회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에 도착하니 23:00이다. 끙끙앓는 소리에 가족들이 더 걱정되나보다.
밤에 강한 사나이들.
2000.8.8.화요일(비)
어제는 부석 창리에 있던 현대건설의 한우 대북지원 행사와
야간 당직근무로 인해 잠을 못자 몹시 피곤하다.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11:36분에 삽교역을 출발 12:27분에 천안역에 도착하여 점심으로 자장면 한 그릇을 먹었다.
이런 것은 열 그릇을 먹어야 배가 부를 것 같다.
13:05분 기차를 타고 16:20분에 남원역에 도착했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배낭멘 사람은 우리뿐이다.
전번에 탔던 택시기사가 우산까지 바쳐주며 기다리고 있다.
꼬불꼬불 가파른 고갯길을 따라 정령치에 올랐다.
비가와서인지 휴게소 전체가 조용하다.
오락가락 빗속을 뚫고 진회장,구회장 그리고 나 변함없는 순서로 산행이 시작된다.
아직은 백두대간 띠지만 보고도 길을 찾을 수 있다.
안개비에서 서서히 빗줄기로 변해버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우의를 걸치지만 고리봉에 오르는 동안 이미속옷까지 젖어든다.
고기리에서 가재마을로 접어드는 길은 들판을 걷는 구간이다.
이정표와 띠지도 없고 날이 어둑어둑해지는데 길 찾기가 힘이 든다.
가재마을에 접어드니 입구에 주민30여명이 나와 웅성웅성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겸연쩍은 낯으로 인사를 하며 지나쳐 마을뒷편에 들어서니 수백년 나이를 드신
노송들이 또한 우리를 반겨주고 있다.
소나무 밑에 소변금지라는 표지판이 이채롭다.
라면박스를 찢어서 쓴 글씨와 내용이 재미있다.
미숫가루와 영양갱을 먹고 호흡을 가다듬어 산에 오르다 보니
그곳에서 텐트치고 자는 사람도 있다. 멀리 희미하게 덕산저수지가 보인다.
이제 후레쉬를 켜야만 한다.
해미 근무당시 가야산 야간등반을 자주 하여서인가 밤길에도 강하다
간간이 호흡소리만 들리고 아무 소리도 아무 경치도 볼 수 없다.
촉촉하게 내리는 안개 비속에 발소리만 무겁다.
수정봉에서 한참 내려오다 보니 손목이 허전하다.
20년 근속으로 경찰청장에게서 받은 손목시계가 없어진 것이다.
수정봉 산신령이시어 손목시계를 제물로 바치오니 안전산행을 도와주옵소서
마음속으로 빌면서 이번 산행의 액땜으로 생각하며 가다보니
이젠 아무도 시계를 찬 사람이 없다.
산길을 밤길을 더듬어 내려오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여원재에 도착했다.
가로등 불빛아래 여원재 이정표와 승강장이 유난히 눈에 띈다.
승강장안에 텐트를 치려고 보니 가끔씩 다니는 차소리에 잠을 잘수 없을 것 같아 민박집을 구하기 위해 동리 안으로 들어섰다.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문밖에 나와 있다.
하룻밤 잘 것을 부탁하니 자기혼자여서 방을 줄수는 없고 건너편
창고에서 자라는 것이엇다. 창고에 가보니
농장 자재창고인데 20여마리의 개들이 자주 짖어댄다.
한쪽편에 텐트를 치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오늘이 귀빠진 날이라고 준비해온
양주 한병을 꺼냈다.
가족과 아침 한 그릇 나눠먹지 못한 아쉬움이 가족에 대해 오히려 죄스런 마음으로 양주맛이 씁쓸하다. 24:30분에 잠자리에 누우니 피곤함에 세상이 어지럽다.
가끔씩 짖어대는 개들 소리에 잠깨어 보면 텐트 밖의 달빛이 혼란스럽다.
개짖는 소리에 잠을 설치고 05:30분에 기상하여 텐트를 걷다보니
우리가 여기서 잠을 잤던가 할 정도의 짐승우리였다.
주인 아주머니 댁에 갔더니 아무도 없어 인사도 못드리고 06:30분에 출발하여
고남산으로 세시간 동안 숨고를 새도 없이 올랐다.
고남산에서 매요마을로 길에 따라 내려오다보니 동리 가운데 통과하게 되는데 대간줄기 중간중간에 도로가 굵게 뚫리고 끊긴 것이 마음에 걸린다.
동리 벗어난 곳에 위치한 민속가구점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가다가
지리산 휴게소 입구에 배낭을 감춰두고 휴게소로 향했다.
점심식사후 간식과 누룽지를 구입하여 출발하는데 사리봉에서
복성이재 넘어가는 길은 굴곡이 없어 더욱 피로가 몰리는 구간이다.
아예 물병을 입에 물고 있어야 했다.
이젠 모두 지쳐 버렸다. 시원한 곳을 찾아 오침을 하기로 하고 자리를 잡았다.
누가 지나갈 사람도 없는 깊은 곳이기에 마음놓고 홀딱쇼를 했다.
타임으로 놓은 핸드폰이 그 사이에 울리고 청솔모가 솔방울을 집어던지면서
난리를 피워 잠에서 깨어보니 땀에 젖은 옷이 소금에 절인 것 같이 하얗다.
구회장은 눈도 밝다 지나는 길에 산딸기, 아그배,벙귀순 등 있으면 있는대로
그냥 지나는 일이 없다.
덕분에 뒤 따르는 나도 입맛을 다실 수 있었다.
복성이재와 치재를 거쳐 치재마을에 있는 철쭉산장에 짐을 풀었다.
철쭉산장의 샤워장물은 얼음물이다.이를 악물고 샤워를 해야했다.
40대의 주인 아주머니는 남편과 사별한지 몇 년 되지 않앗다는데 주량도 만고
동리사람에게 인기도 좋다.. 새벽녘에는 아랫동네 이장하고 술마시고 사라지더니 언제 들어왔는지 모른다.
「가시고문 받는 봉화산」
방안에서 주인 몰래 밥을 끓여먹고 나와보니 주인은 술이 덜깨었나 꼼짝도 않고
강아지만 까닭없이 꼬리치고 있다.
안개비에 젖은 임도를 따라 걷다보니 몇발짝 가지않아 옷이 흠뻑 젖어버렸다.
치재정상은 철쭉 군락지로서 관광지화 되고 있는 곳인데 걷기가 힘이들다.
봉화산 오는 길은 완전히 가시넝쿨로 덮여있어 조금만 조금만 하며가다 반팔 반바지의 손발이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이슬에 핏자욱에 혈인이 되다시피 고문을 받으며 한발한발 걸음을 옮겨야 했다.
한 여름에도 긴팔을 입어야 하는데...
수시로 옷과 양말을 짜입으며 월경산에 오르는데 까치독사가 놀래킨다.
월경산에 웬 뱀이...중재에 거의 다가서자 서울에서 온 거인산악회 회원들이
길을 잃어 헤메이고 있어 길을 안내하자 무척고마워 했다.
그들에게 물병 세 개를 얻어 밭 가운데 있는 샘에서 물을 길어다
중재의 정자나무 아래서 식사를 하고 백운산으로 향했다.
뜨거운 여름의 가파른 산행길 지리산 천황봉보다 훨씬 힘이 든다.
30분 걷고 5분 쉬고 가다말다 오른다.
소금과 물병을 입에다 물다시피하고 웃옷은 벌써 몇번째 짜서 입었나 모른다.
옷냄새가 이상해진다. 백운산을 지나 영취산 정상에 올라서니
몇개의 산악회에서 이 정표를 세웠는데 어디로 가라는 건지 이해가 안갔다.
일단은 물이있는 곳까지 가기로 하고 힘겹게 가다보니
덕운봉의 산중턱에 텐트 한 개가 쳐저 있어 반가웠다.
서울에서 온사람인데 혼자서 대간종주하는 중이란다.
텐트를 치며 그가 알려주는 곳으로 물을뜨러 갔는데 또다시 가시덤불밭이다.
급경사에 수렁길에 빠지며 물을 떠오는데 이것은 유격훈련 받는 것 같다.
오가며 발로 완전히 밟아 길을 뚫어놓고 물병을 배달아 샘표시를 해주었다.
「별밤의 발전기 소리」
이젠 세명 모두 지칠대로 지쳐 있다.
아침이슬에 흠뻑 젖어 갈아 입을 옷도 양말도 없어 그냥 입고 신고 수시로 짜서
입으니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냄새가 어지럽다.
애시당초 속옷은 입지도 않은 상태에서 세수 목욕없는 우리에게
관객이 없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산 죽밭에서 우리 발길을 잡고 늘어져 배낭 스치는 소리만 요란스럽다.
제속도가 나지 않는다.
이미 발바닥에는 서너군데 물집이 생기고 물종독증세가 온다.
깃대봉을 지나 육십령 가까이에 있는 샘터에 갔더니 식수량은 엄청난데 검은색
돌개구리들이 뛰쳐나오고 밤톨만한 올챙이들이 법석을 떤다.
배불리 먹고 마시고 육십령에 도착하니 완전히 패잔병이나 피난민처럼 보이다.
양말과 등산화를 아스팔트 바닥에 말리고 한쪽 곁에 누워버렷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후 쌀과 더덕김치를 구입하고 15:30분에 출발했다.
덕유산장에서 넘어오는 단독산행객들이 겁도 주고 정보도 제공해준다.
뱀들이 눈에 많고 띄고 두꺼비가 버티고 비켜주지 않는다
꿩가족 십여마리가 놀라서 달아난다.
할미봉을 지나면서 야간 산행하기로 하고 또 쉬었다.
장수덕유 오르는 길은 원추리 꽃이 만발했다.
이름 모를 꽃이 만발하고 나비가 난다. 그러나 그늘이 없어 숨이 더욱 찬다.
장수덕유 정상쯤 다가서니 발전기 소리가 난다.
물이 동나가는데 반갑기만 하다. 해는 완전히 지고 별들이 안개꽃처럼 해맑은데
장수덕유 전체에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스럽다.
정상에 올라서니 대형 텐트가 있고 열댓명의 인부들이 누운 채로 반겨준다.
철계단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수통에 물을 가득 얻어가지고
철계단을 맨처음 밟으면서 우리가 그 길을 개통하였다.
물도 얻었기에 텐트 칠 자리를 찾아 한 시간쯤 가자 남덕유 8부능선에 헬기장이
있어 텐트를 치는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몰려 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소변보기가 무섭다.
멀리서 발전기 소리만 요란스럽다. 산정상이라 춥기도 하다.
긴바지가 준비되지 않아 반바지 밑에 반바지를 겹쳐 입고 자니
이상한 꼴이 되었다.
정신나간 사람들
2000. 8. 12. 토요일 (맑음)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뿌옇게 안개로 묻혀 있다.
온톤 소나기 맞은 것처럼 텐트가 젖어있다.
월성치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내 려서는데 몇 발짝 가기도 전에
옷이 젖어 버린다.
라면과 밥을 해서 먹고 삿갓골에 들어서니 한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대피소 방향은 시원한 바람이 넘쳐 대조적이다.
대피소에서 간식을 구입해 동업령으로 향하는데
관리공단에서 오랜만에 일좀 한 것 같다 풀과 나무를 베어 길을 하게
다듬어 놓아 다니기가 부드럽다.
동업령의 식수는 대간줄이기에서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야 하는데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어 산에 오르기보다 더 힘이 든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나무숲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얼음처럼 차갑고 물맛, 밥맛이 아주 좋다.
시간적으로 더 가야 할 것인지 귀가할 것인지 결정을 보게 되는데
하여간 가는 데까지 가보자고 하여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덕유산줄기의 백암봉까지 한시간만에 튀어 올랐다.
백암봉에서부터는 내리막길로 뛰다시피 빠른걸음으로 싸리둥재에 또한
한시간만에 도착했다.
석양이 지기 시작할 무렵 싸리등재에서 송계사 쪽으로 뛰어내려오기 시작
목숨을 건 달리기가 시작됐다.
발톱이 빠질정도의 발가락 사이와 발바닥의 물집은 잊은지 오래다.
124군부대도 우리보다 덜했으리라. 핸드폰은 아예 터지질 않는다 .
기차 예매시각은 다 되는데 다급만 해진다.
송계사에 도착했으나 어치피 늦은 것 졸도하다시피 쉬다가 살금살금
계곡으로 들어가 목욕을 하고 구회장은 택시를 찾으러 떠났다.
송계사에서 거창읍까지 택시비가 2만원이고 송계사에서 김천까지는 5만원인데 5000원 깍자고 실갱이 하다가 거창시내까지 들어가게 되고
택시 잡느라 실갱이하다 늦는 바람에 김천역까지 총알택시를 타고 21:05분차를
타려했으나 눈앞에서 떠나는 기차를 보며 아쉬워했다.
500원 때문에 택시비와 기차표 환불요금
그리고 세시간 늦게 집에 들어가야 하는 엄청난 손해를 보게되니 허탈하고
피곤에 쌓인 몸을 주체하기 힘들다.
발바닥은 물집으로 진무러지고 손과 발은 가사에 긁혀 상처로 뒤덮혀 있고
며칠간 손보지 않은 내얼굴, 수염과 땟국을 부랑거지인가 산신령인가 내 얼굴
나도 모르게 변해버렸다.
며칠간 뭉쳐진 냄새로 인해 승객들이 슬금슬금 피해버린다.
서산에 도착하니 새벽 3시다. 가족들이 잠에서 깰까 조심스러워진다.
살금살금 샤워를 하고 살금살금 기어들었다. 말없이 반겨안겨주는 마나님. 그
래도 우리집이 최고다. 세상이 포근해진다.
「싱글벙글해장국 부글부글 해장국」
10월중 123징검다리 연휴에는
덕유산에는 추풍령까지 마치기로 결정하고 준비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태안읍 삭선리의 쓰레기 매립장 반대시위가 발생했다.
주무계장으로서 빠져나갈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우리 과장님도 기본교육으로 입교하게 되어 계획의 수정이 필요했다.
해미에 연락했더니 나는 빠져도 그냥 간단다.
얄미운 사람들. 그러면 10월 1일은 참석하고
2일은 시위를 막고 3일에 다시 합류하는 것으로 잠정합의를 하고 준비했다.
9월30일밤 신주공 지하슈퍼에서 누룽지를 구입하고
홍성역에서 천안으로 도착하니 대합실 안은 연인들의 쉼터이다.
버림받은 여자, 아쉬워하는 여자등 이별과 만남의 역이다.
김천역에 도착하니 01:30분이다. 역전 옆에 있는 싱글벙글 해장국집에서
해장국과 계란후라이를 시켜먹고 거창택시로 3만원에 계약하고
김천택시 한 대를 선정 다음을 위해 명함을 안개 얻어 02:00에 출발하는데
후레쉬 준비가 되지 않아 중가에 서서 눈짐작으로 가자니 더욱 힘이든다.
지봉 및 삼거리에 03:30에 도착 횡경재에 04:45분도착했다.
꽃봉에 05:45분 도착하니 표지석이 부러져 잇어 돌로 바쳐놓았다.
갈비봉을 거쳐 빼재에 도착하니 난 캐러 가는 사람들 10여명이 웅성거리고 있다.
휴게소에서 간식을 구입하는데 신혼부부가 소꿉장난하듯 살고 있다.
정다워 보인다.
김천에서 먹은 해장국이 계속 애를 태운다.
속이 메스껍고 부글부글 속이 안좋아 까닭없이 배만 부르다.
세명이 교대로 하루종일 육관악기만 울려댄다.
삼봉산에 올라 소사고개로 내려가는데 발목과 허벅지 사이가 뒤틀린다.
급경사를 내려가는데 한발짝 띄기가 힘들다.
소사고개 슈퍼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가다보니 서울에서온 대간종주팀들이
10여명이 있다.
또 다시 내려오는 대석산의 하산길은 발목과 허벅지 사이가 튀틀려
파스를 뿌리고 주물러도 안된다.
해는 떨어지고 후래쉬는 없고 소나무 숲길을 올뺴미처럼 기다시피
덕산재에 도착해보니 주유소는 패쇄되었고 예약된 택시는 오지 않았다.
먼저 산행에서 뺴재까지 마쳤어야 했는데
나머지 구간까지 맞춰서 하자니 이렇게 힘이 든다.
백두대간을 포기해야할 정도로 힘에 겨워진다.
매번 시간에 쫓기다시피 서둘러 속도를 내야하는 것은
김천에서 천안,천안에서 홍성의 연결되는 기차시간 때문이다.
삼봉산은 1254m, 소사고개는 794m, 삼도봉은 1250m, 덕산재는 833m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두 고개를 오르내리는데 다리에 이상이 없을 리 없는 것이다.
진회장과 구회장도 다리에 파지가 나서인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잠 한숨 안 자고 16시간 30분간의 산행이었다.
전 승 진
2000. 10. 31. 화요일(흐림)
휴가중 나머지 추풍령 구간을 마무리하고자 준비하는데 갑작스레 또 바빠진다.
전경집체교육, 원북파출소 이원분소의 무기고이관 그리고 저녁에는 고등학교 동창생들의
저녁모임들 저녁식사 후 중간에 빠져나와 훙성역으로 향했다.
홍성역의 특이점은 음악에 있다. 여행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음악이 발길을 잡아
녹음을 부탁했으나 컴퓨터에 입력되어 어렵다 한다.
김천역에 도착 김천의 단골기사에게 핸드폰하고 해장국집에서 식사하다보니 코펠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산에서 발견했더라면 아찔했다. 택시기사와 서너가운데 낚시점에 찾아다녀 코펠을 샀다.
덕산재에 도착하여 후라쉬를 찾다보니
김천역에서 까지 있던 것이 사라져 버렷다.
매번 뭘그리 잊어버리는지 다행히 구사장이 한 개 더 준비해와 03:00에 출발했다.
덕산재에 오르면서부터는 굴참나무 낙엽이 발등을 덮도록 쌓여있다.
걸음걸음마다 바스락바스락 완전히 소음공해다. 지팡이에는 꼬치구이 꿰이듯
자꾸만 꿰어져 떼어내기 신경질난다. 맨 뒤에서 정신없이 능선을 오른느데
누가 갑자기 뒤에서 배낭을 잡아 다닌다. 등에 땀이 솟는다.
뒤돌아보니 배낭끈이 나무가지에 꿰인 것이었다. 앞뒤로 돌려도 반응이 없다.
배낭을 내려 끌러내야만 했다.두 사람은 이미 보이질 않는다.
야속한 사람들. 뒤에 따라가는 사람의 헛점일 수 밖에 없었다.
부항령에 도착하기전 후레쉬를 끄고 잠시 쉬는데 바스락바스락 걷는 소리가 난다.
바짝 다가온 것 같아 소리를 질러대도 가만히 있다.다시 큰소리로 소리치니 달아난다.
발자국 소리로 보아 곰인 것 같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뒤돌아보니 우리가 과연 저기 지나왔나할정도로 까마득히 멀기만 하다.
대덕산과 삼도봉이 나란히 처녀가슴처럼 봉긋이 솟아 올라있다.
이제 삼도봉에 다 왔으려니 하고 건너 산을 바라보니 멀리 건너산에 누가 서 있는것처럼 보이는데
가까이 가보니 그것이 삼도 화합비였다.
삼도봉에 오르는 길은 쓰레기들이 가끔씩 쌓여있어 찌푸리게한다.
삼도화합을 다지기 위한 취지문을 읽은 후 세바퀴돌며 삼도화합 기원을 했다.
여기서도 특이한 것은 충청도 쪽에는 조각된 내용이 허술하고 관리도 허술하다는데 있다.
조금 후 무주쪽에서 50대 후반의 남자 한 명과 여자 두명이 약초캐러 와서는 전라도 타령을 한다.
어쩔수 없는 감정들이다. 마대푸대를 묶어 메고 장화를 신었는데 우리보다 훨씬 걸음이 가볍다.
물있는 곳을 알려주어 식수를 준비한 후 빈병을 매달다 표시를 해주었다.
하루종일 낙엽으로 인한 꼬치구이 그리고 소음에 시달리며 화주봉에서 16:00경 쉬고 있는데
등산객 한 명이 축지법을 쓰나 놀란 맘으로 뒤따라 가다보니 애인인듯 싶은 여자가
우두령에서 혼자 역으로 찾아와서 만나고 있었다.
달려할 사연이 충분히 있던 사람이구나 위로하며 우두령에 도착했다.
우두령 근처는 식수를 구하기 힘든 곳이어서 그 사람들 차로 동리에서 물을 구했는데
서산의 성연면 오사리가 친정이라며 남은 반찬, 과일 등 너무도 많은 친절을 베풀어준다.
우두령에서 낙엽을 굵어 모아 텐트를 치고 침낭 속에 들어가니
땀냄새 발냄새 숨을 쉴수 없을 것 같다.
밤새 울어대는 매일유업 김천농장의 송아지 소리가 우두령 이라는 이름과 어울리는것 같다.
2000. 11. 1. 수요일(비)
핸드폰에서 알람이 새벽 4시에 약속대로 울리는데도 축축히 내리는 빗소리에 그냥 일어나질 못하고
침낭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여섯시경 어제 그사람이 나타나 깨워 일어섰다.
비 때문에 갈까말까 망설이다 07:00 출발했다.
밤새 소 울음소리에 잠을 설쳐서인지 몸이 뻐근하다.
통신중게탑을 지나 바람재에 와보니 대간줄기를 완전히 파헤쳐 고랭지 채소밭으로 만들어놓았다.
배추 몇 포기를 뜯어 점심에 먹기 위해 준비했다.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우의를 계속 입어야 되니 거추장스럽고 어제보다 낙엽 밟는 소리는 적지만
지팡이에 꼬치구이는 여전하다. 연 이틀 동안 쓸데없는 잡목밭을 지나는 것이다.
수종개량을 하던지 해야지 넓은 산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황악산에 오르니 직지사 3거리라는 표지판이 3개나 있는데 주변이 모두 어지럽다.
황악산 정상 소나무에 물병이 하나 매달려 있는데 구회장이 다가서더니니 그 물을 마시는 거였다.
놀라서 소리쳤다. '그만 마셔요' 진짜로 겁두 없는 사람이다.
탈나면 어쩌시려구. 궤방령에 내려서니 여기에서도 물구하기가 만많치 않다.
다행이 포도밭 가운데 있는 빈집에서 비를 피하며 배추쌈을 싸서 점심을 해먹고 출발했다.
가성산에 오르는 길은 너무 가파르다. 쉴새없이 조금씩조금씩 올라가는데 구회장은 얼마나 목이 타는가
길바닦의 나뭇잎에 고여있는 물을 후륵후륵 계속 주어 마시며 지나고 있다.
가성산 정상에 오르니 서울에서 12박13일간 대간종주하는 젊은 청년 세명을 만났다.
배낭의 크기가 우리 것의 두배는 된다. 진회장이 그들에게서 물을 얻어마시자 구회장도 덩달아 마신다.
염치없는 사람들 한 모금씩 조금이나 마시지.
기차예매시간 때문에 서둘러 눌의산으로 향한다.
눌의산 정상에 헬기장을 만들었는데 옆에 있는 땅을 돋구어 만들고 통로 크기와 관리가 너무도 허술하여
정상 전체가 볼썽 사납다. 추풍령으로 내려오는 길은 너무도 급경사여서 나무와 나무를 잡으며
자동으로 튀어내려 왔다.
빗물이 얼굴에서 코로 입으로 내려오는데 짭잘하니 목마름과 허기를 해결해 준다.
아슬아슬하게 신호위반, 속도위반, 총알택시에서부터 뛰어 김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5호차에서 저녁식사와 맥주 한병씩 마시니 이젠 살것 같다.
백두대간을 삼분지 일가량 마친 상태에서 그동안 지나온 길에 대해 뒤돌아 보면
퍼득퍼득 기막힌 사연에 위로와 자위를 하지만 필요한 사전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산행이다 보니
계획과 실전에 차질이 생겨 훨씬 더 고생을 하게 됐다.
조선일보사가 발행 한 백두대간 종주산해오가 몇 명의 산행기를 중심으로 계획을 세웠지만
가보지도 않고 글을 쓴 사람도 있어 혼란만 가중되고 산행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게 되어 매번째마다
노란 하늘을 구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백두대간 산행 시작이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해 나가 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진 자학의 끝에서도 내가 살아 있음이 절실히 느껴지는 그런 감동에 취해
또 다시 아니 갈수 없는 것이 답이되고 말았다.
반백을 마주선 나이에 무사히 버티어 주는 체력과 가족의 이해가 있는한 앞으로도
세상에 가까워 졌다 멀어졌다 하면서 제각기 또다른 세상의 유혹앞에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안역에서 20:50분 장항선 기차를 타려고 플랫폼에 나가서 있는데
50대 중반 남자둘이서 다정히 껴안고 있어 그런가보다 했는데
잠시후 다시보니 어머나 세상에 뽀뽀를 한다.
기차안에서 먹은것이 솟아오른다. 슬금슬금 모두 자리를 비켜서고 있다.
2001. 2. 11. 일요일(눈)
날씨 관계상 동절기를 피해 그동안 산행을 중지하였지만 어느 정도 날씨가 좋아진 듯하여
간단히 준비 출발하기로 하고 날을 잡았는데 기상 예보에 눈이 조금 온단다.
눈이 오면 얼마나 올거냐 하면서 홍성,천안,김천을 거쳐
단골택시로 추풍령 근처에 다가가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02:00경 추풍령 표지석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는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온다.
금산을 향해 오른는데 벌써 미끄럽기 시작한다.
앞만 보고가다 정상에서 왼쪽을 비쳐보니 후래쉬 불빛 끝이 보이지 않는다.
눈내려가는 모습이 황홀하다. 산의 한 쪽편을 두부 자르듯 돌을 캐고 잇는 장소였든 것이다.
안전시설이 전혀 없는 상태로 조심하지 않으면 추락하기 좋은 곳이다.
정말 아찔한 곳이었다. 두 시간 정도 산행을 하는데 계속 오는 눈이
나무위에 쌓였었는데 벌서 등산화가 덮이기 시작한다.
어디에도 불빛은 보이질 않는데 방향도 없이 굉음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사기점 고개 부근에 다가선 것이다. 통신탑이 부근에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사기점 부근의 대간 길은 샛길이 여기저기 나있고 띠지도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어 길 찾기가 힘이 든다.
지도를 펴고 후래쉬를 비춰봐도 나침반을 들여다 봐도 미로 속을 헤메이는 것 같다.
요행이 산마루길을 만나 그곳을 빠져 나와보니 벌서 눈이
등산화를 넘쳐 그 틈새로 눈이 들어오고 있다.
어느새 눈이 이렇게 와버렸나보다.
인도를 따라 마을 아래쪽으로 길게 내려 왔다가 작점고개로 향해 넘어가는데
앞에가는 두 사람의 머리와 배낭에 눈이 쌓여 눈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것 같다.
이젠 쌓인 눈으로 길이 없어져
가끔식 셋이 흩어져 길 찾기를 해야한다.
나무마다 그 위에 눈이 가득 쌓여 나무기지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져 비켜가지 않으면 안된다.
등산복 위에 쌓인 눈이 속으로 녹아 몸이 얼어 붙는 것 같다.
혹한 복도 소용없어 그 위에 우의를 끼어 입으니 이제 살것만 같다.
계속적으로 터널을 빠져나오듯 우거진 나무 밑을 기다시피 하여
06:00경 작점고개에 올라서니 무릎까지 눈이 쌓여 있었다.
이 밤에 이 눈속에 산행하는 정신 나간 사람은 우리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구회장은 용문산을 넘어보자 한다. 냉철히 판단해보니 갈수는 있겠지만
교통이 두절되어 집에 가고 출근할일이 걱정되어 하산하기로 하였다.
작점고개 정상에서 어느 쪽으로 하산할까 망설이다 충청도쪽으로 하산하는데
무릎까지 쌓인 눈속을 걷자니 온몸이 땡기고 숨이 가빠진다.
바람을 피해 다리 밑에서 야식을 하는데 덜덜 덜며 웅크린채
먹는 모습들이 처량하여 서로 웃고만다.
찬바람에 말한마디 못하고 추룽령저수지를 돌아 추풍령까지
2시간 가량 가는데 날이 밝았어도 사람하나 차 한대 구경할 수가 없었다.
추풍령역에 도착하니 역무원들이 눈을 치우는데
모두 친절히 대해주며 난로를 피어준다. 대합실이 아늑하고 구수한 맛이 든다.
건너편 경부고속도로에는 완전히 교통이 마비되어 차 한대 다니지 못한다.
동네 마을버스 같이 포근한 통일호 기차에서
무궁화호로 영동에서 갈아타는데 승객이 장 서듯 많아졌다.
예매된 자리가 없어 5호차에서 맥주 한잔씩 하며 천안역에 도착하니
아직도 고속도로는 불통이고 천안에서 홍성 그리고 서산 구간도 곳곳이 마비되어 있다.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모두 안절부절이다. 그날은 30년만에 폭설이고 그중에서도
추풍령이 가장 많은 적설량을 보였으며 소백산에서는 두 명의 등산객이
동사하였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는데 천안역에서 많은 사람에 휘말려 나오다보니
영동에서 천안까지 무임승차하고 말았다.
이후의 종주기는 같이 산행한 진회장이 쓰기로 하여
저는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