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일(일요일)에는 대충산사 회원들과
십승지의 하나인 봉화춘양둘레산길을 다녀았습니다
십승지란.....???
십승지의 정확한 위치는 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십승지를 언급한 책은 <정감록>, <남서고 비결>, <감결>, <징비록>, <운기구책>,
<유산록> 등 60여종이 있다
십승지에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십승지를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하여
흉년, 전염병, 전쟁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십승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등 명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이 높고 험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어 있는 곳이다. 십승지는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가 대개 한 곳 밖에 없는데 물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다또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공간에 수량이
풍부한 평야가 있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여 1년 농사지어 3년을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개 십승지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는 곳으로
발전이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도 적들의 접근이 전혀 없다.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위치
1. 영월 정동 상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2. 봉화 춘양 일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3. 보은 속리 난증항 일대 (충북보은군내속리면과 경북상주군화북면화남리 일대)
4. 공주 유구 마곡 두 강 사이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5. 풍기 차암 금계촌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6. 예천 금당동 북쪽 (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7. 합천 가야산 남쪽 만수동 일대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8.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아래 방음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9. 부안 변산 동쪽 호암 아래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남원 운봉 두류산 아래 동점촌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십승지"봉화 춘양둘레 산길은....
정감록 비결에 한국의 십승지(피란하기 좋은 열 곳)의 하나로 되어 있는 곳이
춘양면 애당리와 도심리,봉성면 우곡리 윗텃골이다.
이 곳 애당리 북쪽 골짜기 끝에 자개동이 있다.
자개동은 가상적인 이상촌으로 난리가 없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이 이상촌에 들어가면 자개동 성문을 거쳐야 되는데
이 성문은 양쪽이 큰 바위로 되어 있다.
이 성문은 아무 때나 여닫히는 것이 아니고 자시(밤11시-밤12시 사이)에
산이 크게 울리면서 열리고 축시(밤1시-밤2시)에 닫힌다.
이러한 유래로 이 마을을 자개동이라 하고 자개동 석문을 따서
일명 석문동(石門洞)이라고도 한다
또 도심리 감동골은 안동시 풍산읍 하회마을 대학자 겸암 유운용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피란처를 구하기 위하여 가야산 등 여러 곳을 답사해 봤으나
이곳 만한 곳이 없어 홍종삼씨 집옆에 움막집울 짓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피난하면서
임금과 나라의 백성과 아우를 위하여 앞밭에 제단을 세우고 하늘에 기도를 드리던
단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그때 심은 감나무 세그루 중 두 그루는 지금도 남아있어 동명이 감나무모치(모통이)라
불리우고 있으며 임진왜란이 끝나자 도체찰사로 있던 서애 유성룡은 이곳으로
먼저 와서 가족을 솔권하여 하회로 돌아갔다고 한다.
봉성면 우곡리 윗텃골은 피란처로 알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어 이호준이란 사람 이
제일 끝까지 살았고 유루골 홍해 배씨의중시조 오암 배이순도 여기에 은거했고,
태백 오현(홍두곡,강잠은, 심 각금당, 홍 손우당,정포옹)도 낙남하여
처음 은거한 곳이 여기다 묘하게도 크고 작은 난리 때 이곳만은 외국 군인이
쳐들어온 일이 없었으니 비결이 무색한 것만은 아닌듯하다. .....(펌 : 춘양면 유래집)
1. 산행일시 : 2013.6.23일(일요일)
2. 산행장소 : 십승지 봉화춘양둘레산길
3. 산행인원 : 대충산사 회원 15명
4. 소요시간 : 약 9 시간(오전 비 오후 짙은안개)
5. 주요로선 : 석문동==각화사==각화산==왕두봉==형제봉==새주막교
석문동 : 동이정에서 세갈래길중에서 중앙의 길을 통하여 약 1km 지점에 석문동이
위치하며, 마을입구 양쪽에 큰바위가 우뚝 솟아있어 그 사이로 사람이 겨우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석문역활을 한다고 하여 석문동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천연의 요새지로
전쟁시 피난을 하던 곳이다. 정감록의 전국십승지 중의 한 곳이라 전해지며, 자개동
석문에서 석문동이 유래되었다 한다. 지금은 석문동계곡 입구에 15가구 정도가 계곡을
따라 산재해 있으며, 그 안쪽에는 민가가 없으나 해방이후에도 수십가구가 살던 집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석문동을 통하는 태백산에 이르는 등산로가 '98년도에 정비되어
백두대간 종주반이나 태백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종종 이용하고 있다.
동이정에서 약 5km 지점에 석문바위가 있다.
[출처] 봉화군 춘양면 지명유래
특이하게 가로수가 배나무로 되어있다
각화사 주차장에서 준비
각화사 귀부
각화사 입구
담장이 재미 있다
절구통 해도 될 소나무들
패자의 설움
안개비~~~
첫번째 각화산
삼각점이 있는 각화산
왕두산
끝봉
꼬리 진달래(이번에 배움)
지도 나침반 핸드폰 고도계 총동원 길찾기~~~
오랜만에 만나는~~~
940m봉
형제봉
쇠똥구리의 일종
멀리 오늘의 종점
멧돼지를 쫓기위한 방책 일까~~~
멧돼지 흔적(새끼딸린 멧돼지를 만나기도 함)
고전적 TV 안테나
알바로 다시 길을 찾는다
다래
당귀 채취
삼각점이 묘지내에 있다
묘지의 나무를 제거해 주고 표찰을 달고~~~
춘양목이 그냥 춘양목이 아니다
억지춘양의 유래 : 해방전부터 영주에서 철암까지 영암선 철도를 개설도중
8.15해방과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 지금의 방전삼거리 근방을 지나 녹동방면으로
90%이상 공사가 진행중 당시 춘양면 서벽리에 고향을 둔 국회의원 정문흠씨의
주장에 따라 춘양면소재지를 거치도록 공사계획이 변경되어 법전면 소지리와
춘양면 의양리를 잇는 터널300m와 연이어 당시 철교 공사로서는 보기드문
높이 30.7m 길이 60m의 철구조 빔다리가 놓여지는 등 우여곡절 속에
억지로 공사가 추진되어 영동선(당시 영암선)이 춘양면 소재지를 돌아가게 됨으로써
억지춘양이란 말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봉화군 춘양면 지명유래
드디어 목적지 버스가 보인다
봉화 기상관측소
한국산림과학고 뒤편에서
한국산림과학고교
잠을 설친 상태에서 홍성에서 03:30에 홍성팀과 합류
대전에서 대전팀과 04:30 다시합류 빗줄기 오락가락 각화사에서 09;00 시작하여
9시간 산행을 하고 집에 도착하니 23:30 이다
어차피 1,2,3구간은 참석도 못했지만 피로가 누적되어 산행기 올리기도 피곤하다
그래도 길을 찾아 다니는 개척산행의 묘미에 벗어날수는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