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봉수산 산행

괜차뉴(갈수록 괜차뉴) 2013. 6. 7. 11:41

 

 

 


 

5.18일 봉수지맥 산행에 이어

서부산악회원들과

번개산행으로 봉수산을 다시 다녀왔습니다

 

1. 산행일시 : 2013.6.6(목요일)

2. 산행장소 : 봉수산 주변

3. 주요로선 : 마사리 고개==바위지대(너럭바위)==임존성터

==헬기장(묘순이바위)==봉수산정상==큰비티고개==대흥동헌

==의좋은형제공원==예당저수지

4. 소요시간 : 놀며쉬며 약 3시간 30분

4. 산행인원 : 서부산악회 10명

 

해미 읍성에서 소방차의 차로 출발

(서산9경에 가야산이 다섯 곳을 차지하고 도비산이 빠진것이 아쉬움)

 

마사 버스정류소에서 하차(마사고개에는 주차장 없음)

 

멀리 보이는 너럭바위를 향하여~~~

 

 

마사고개를 향하여

 

 

길가의 오디를 따먹으며~~~

 

마사고개(구룡고개,구름고개)에서 왼쪽 임도로~~~

 

가야할 바위지대(너럭바위)

 

바위에 오르기전 몸을 추스르고 준비~~~

 

 

 

 

5.18일에 왔을때엔 없든 벌통

 

멀리 초롱산과 구렁산(오늘은 오서산이 보이지 않는다)

 

 

 

 

 

 

 

 

 

네발로 200m정도는 기어야 하니 스릴 만점이다

 

 

오른쪽은 홍주마사 왼쪽은 광시마사 가운데는 봉수지맥 산줄기

 

사이좋은 산씨 남매~~~

 

드디어 임존성터(마사고개에서 약 한시간 정도 소요됨)

 

몇살이나 먹었을까~노송 앞에서~~~

 

성터를 따라 한바퀴 도는 산행을 할수도 있슴

(예전에는 저곳이 나무가 없는 벌판으로 큰샘이 있었는데~~~

임존성의 봉수산은 한자로 받들봉 물수자를 쓰기도 하며(奉水)

세계최초 세계유일의 수공산성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어릴적 초파일에는 봉수산에서

예산의 대흥면 청년과 홍성의 금마면 청년들이 해마다 패싸움 하던곳으로

나역시 팔뚝에 큼직한 영광의 상처가 하나 있슴~

 

묘순이 바위

 

 

### 묘순이 바위의 전설 ###

옛날 이 근처에 힘이 장사인 묘순이와 길동이란 남매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힘이 장사여서 항상 힘자랑하는 일만을 하면서 자랐고,
묘순이도 길동이와 똑같은 일을 해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들은 온갖 재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팽팽하게 맞섰다.
오빠는 동생이 없었으면 했고,
동생은 동생대로 오빠 때문에 뽐낼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당시 백제의 국법에는 한집에 장사가 둘이면
세력이 커지고 반기를 들 염려가 있다하여 한사람을 죽이도록 되어있어
어차피 남매 중 한사람은 죽어야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어머니는
그들에게 내기를 한번 해보라고 했다.
내기란 길동이는 무거운 무쇠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는 것이고,
묘순이는 그 동안 성을 쌓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는 쪽은 죽어야 한다고 극단적인 제안을 했고,
둘 다 좋다고 함으로써 그들의 생사를 건 내기는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신호에 따라 길동은 무거운 무쇠나막신을 신고
서서히 한양 쪽으로 달려갔으며,
묘순이는 부지런히 돌을 날라 성을 쌓아갔다.
길동이는 한양까지 가는 동안 한번도 잠자리에 들지 않고
서서 잠을 자며 걸었다. 묘순이는 성벽을 빨리 쌓기 위해서
큰 돌로만 골라서 앞치마에 날랐으며,
땀이 많이 흘러도 물도 마시지 않고 일만 했다.
그때 어머니는 남매 중에서 누구 하나가 죽어야 하는데,
아들이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됐다.
아들보다는 딸이 죽어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성벽을 바라보니,
성은 벌써 많이 쌓아져 있었다.
그 사이 길동이는 한양을 돌아서 귀로에 올라 뛰어오기 시작했다.
성벽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는 길동이에게 될 수 있는 한 시간을 벌어 주려고
묘순이가 좋아하는 종콩밥을 만들어서 묘순이를 불렀다.
묘순이는 한양에서 내려오는 길을 바라보아도
아직 길동이가 보이지 않고 해서 안심하고 산을 내려와서
종콩밥을 맛있게 먹어 거의 사발이 비어 가는데
길동이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깜짝 놀란 묘순이는 마지막 하나 남은 돌을 쌓기 위하여
아래에서 큰 돌을 안고 산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큰 돌에 깔려 죽고 말았다.
그래서 그 내기는 길동이가 이겼고,
어머니는 슬퍼하면서 묘순이를 성벽 쌓던 곳에 큰 바위 밑에 파묻었다.
지금도 묘순이 바위 앞에 가서 돌로 바위를 두드리며
“묘순아, 묘순아…”, “종콩밥이 원수지?”하면
바위에서 “네!”하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홍성 산꾼등이 홍성둘레길 표지판 정리를 잘 해놓음

 

 

 

5.18일 봉수지맥 당시의 띠지

 

눈만뜨면 보이던 산

세상에서 최고로 높은줄 알았던 산

영원한 고향의 산 이기에

봉수산에서 제 삶이 시작되었다 할수 있지요

 

 

 

 

 

여기서 찍었던 고딩때 사진

 

어릴적 공원묘지가 들어선다고 한후에 야금야금 화장장으로 변하여

제대로 보상도 못받고 들어선 내고향 흉물 화장터

 

 

 

예당저수지와 배수갑문

 

416m봉 옆의 하산직전 전망바위에서 중식

 

큰비티 고개에서 우측으로~~~

예전엔 금마면(홍성)에서 대흥면과 예당저수지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였슴

(초딩시절 그리고 동리교회에서 소풍 오던곳으로

오른쪽에 박문수어사의 묘지가 있었고 봉수산에는 금광이 많아 금굴에서

식수를 조달하고 금굴에서 박쥐 잡는다고 헤메든 기억이 새롭네요)

 

길가의 오디를 따고

 

웰빙식품으로 뽕잎도 따고~~~

 

 

약수터를 지키는 두꺼비

 

 

불루베리

 

의좋은 형제비

 

보호수와 대흥 동헌

 

사랑의 선물

 

대흥은 예당저수지를 만들기전 까지만 해도 옛군청 소재지로 번창 했던곳임

 

 

 

 

의좋은 형제 공원

 

 

 

예당저수지

 

 

봉수산 산행은 예산군 광시면과 홍성군 금마면의 군경계인 마사고개에서

너럭바위라는 바위지대를 타고 봉수산 정상을 넘어

예당저수지를 향하는것이 최고인데 원점회귀가 아니므로 차편이 곤란한바

대흥면에는 택시가 없으므로 예산군 광시면의 개인택시인

이을주(011-454-1210 또는 사무실 041-332-0878)로

연결 하면 됩니다(약11.000원 정도 소요됨)

 

##################################

#####################################################################

 

 

2014.11.1(토요일)

회사 영자들과  산행 사진 입니다~~~